원장님 소개

원장님 소개

인간은 왜 태어나는 것일까?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을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정해진 대로 살아가게 만드는 ‘운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생뚱맞게도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라 제가 기억하기로는 4살 5살 정도부터 든 의문입니다.
성인이 되고 첫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 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제발 운명이란 것이 없기를 바랐다”
“운명이란 것이 없기를 바라며 50년을 공부했는데...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니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더라.”

그리고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던 그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좋은 운을 만나 이름도 알리시고 일생을 노력해서 버신 것보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셨습니다.

하지만 좋은 운이 끝나고 돌아가실 때는 평생을 외롭고 가난하게 보내셨듯이, 추석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조문객도 없이 쓸쓸히 가셔야만 했습니다.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아 간 것이었습니다.

운명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제 경험으로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운명이 존재한다.’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오로지 ‘한바탕 요란한 인간 욕망의 소동’을 기록할 수 있을 뿐, ‘고요함’을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꿈틀대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에게는 운명의 굴레를 씌울 수 있지만, ‘고요함으로 가득 찬 인간’에게는 운명의 굴레를 씌울 수 없습니다.
‘꿈틀대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은 운명이라는 멍에를 메고 무거운 짐으로 고통 받아야 하지만 , ‘고요함으로 가득 찬 인간’은 운명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꿈틀대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은 무언가를 손쉽게 얻으려는 그 ‘탐욕’ 때문에 스스로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 쓴 채 ‘자유의지’가 아닌 ‘악마나 타인’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탐욕’ 때문에 스스로 ‘멍에’를 메고 ‘탐욕에 비례하는 만큼의 무거운 짐’을 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그렇게 말렸건만, 본인 스스로 ‘운명’이라는 ‘굴레와 멍에’를 쓰고 메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욕망’에 비례하거나 그 몇 배로 고통 받으며 살아갑니다.

2005년부터 이 업(業)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인간의 운명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본 듯이 얘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곧 인간은 절대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일면으로만 발달하며, 변할 수 없는 고정된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인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멀지않은 미래’ 정도 뿐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멀지않은 그 미래 조차도 온전히 정해지지는 않아서, 제 사무실을 나가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아무리 이성적인 수단들을 동원해도 확신이나 답을 찾을 수 없는 때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 순간에 약간의 조언이 필요하신 분들은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범위에서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 法山(법산) 올림 -